패밀리게시판 깊은 섹스
2012-07-20 15:18:11
운영자 <> 조회수 3369

 녹초가 될 정도로 깊은 섹스를 한 것은 정말 오랫만이야.

 

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.
그녀가 들었을까.
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자코 있었다.
호홉을 고르는 건지
후회하는 건지
아니면 깜빡 잠이 든 건지.
알 수 없다. 킨제이 보고서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.
어째서 모든 여자들은 섹스를 하고 난 후의 적막함을 즐기는 것일까.
나는 그런 적막함이 싫다. 어두운 방 안에서
똑딱이는 시계소리를 들으며
상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.
잠 잔 것을 후회하는지.
좋았는지 나빴는지. 어떤 비밀스러운 평가들이 오가는지.
임신의 걱정은 없는지. 콘돔이 찢어지지는 않았는지.
저 녀석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방금 그 짓을 했을까
방금 느낀 그 찌르르한 기분이 오르가즘이었는지.
찌르르함이 아닌 짜르르함이 필요한 건지.
그도 저도 아니면 울렁거림이 필요한건지.
뭐 그런 생각들을 하는 걸까.
모르겠다.
저 작고 귀여운 여자의 몸 속에는
내가 모르는 또 다른 비밀들로 가득하겠지.


엎드린 그녀의 잔등을 바라본다.
굴곡진 아름다운 선이 목덜미에서 허리로.
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진다.
난 황홀하게 쳐다본다. 내 안에 양순함과 외로움이
동시에 고개를 드는 듯한
그런 섹스를 하고 난 뒤 나는 늘 잔인한 생각을 한다.

 

- 깊은 섹스?
- 응
-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봐.
- 그래?

그녀는 내가 피우던 담배를 빼앗아간다.
그리곤 천정을 바라보고 깊게 들이마신다.
푸른 연기가 허공으로 퍼져나가고 모든 순간들이 몽환적인 것처럼 보였다.
내 말을 들었구나.
그녀의 작고 귀여운 젖가슴이나
길쭉하고 암팡지게 파인 그 배꼽.
혹은 길고 매끈한 허벅지들이 순간적으로 보이다 사라진다.
나는 나란히 누웠다.

- 깊은 섹스가 뭔데?
- 그냥 깊은 섹스지. 뭐.
- 물리적으로? 아니면 감정적으로?
- 음. 둘 다 아닌 것 같은데.

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이어서 말했다.

- 깊은 섹스란 말이야. 그건 깊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지. 내가 너를 기억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섹스란 말이야. 무슨 말인지 알겠니. 마치 이런거야. 너와 섹스를 하려고 네 옆에 누운 그 순간 네 몸 속에선 영혼이 빠져나오는 거지. 그리고 그 영혼은 우리가 관계를 가지는 내내 우릴 지켜보는 있어. 그리고 절정에 다다른 그 순간. 네가 어쩔줄 몰라서 내 몸을 껴안고 있는 그 순간에 그 영혼이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. 그리고 내 등에 무언가를 찔러 넣지. 그때 난 느끼는 거야. 아 깊숙하게 무언가에 찔렸구나 하는 느낌. 그리고 흔적이 남게 되는 거지.
그건 말이야. 물리적인 것도 감정적인 것도 아니야. 단지 우연히 일어나게 되는 일일 뿐이지.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오직 단 한번만 일어나는 일이라고. 내 가슴 깊은 어딘가에 남게되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과 같은 느낌으로. 먼 훗날 너와 내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혹은 잊혀지게 될 때에도 기억하게 되는 사진같은 거지. 알겠니. 그건 말야, 일종의 너에 대한 의무감과 같은 기억으로 남게 될 거란 말야.
여자들은 남자들이 대단히 단순하게 섹스에 임한다고 생각하지. 몸에 불쑥 튀어나온 막대기 같은 성기를 들이대고 어느 곳에서건 그 순간의 쾌감을 위해 아무하고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남자의 섹스라고 생각하지.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. 하지만 깊은 섹스는 다르거든. 그건 의식과 관계 있어. 절대 아무하고나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지.
난 방금 너와 그런 걸 했어.

나는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
이야기했다.


그녀는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.
이게 무슨 뜻인지를.
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.
어른이 되고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이런 어리숙한 말들로 그녀와 나 사이에 맴도는 불안함을 잠식시키지 않아도 되겠지. 그렇게 더 익숙해져버리고 나면 기억이고 나발이고 말하는 청승은 유치해지겠지.
알고 있다.

 


그러나 말이다. 세상에는
아무리 잔인하고 비참하여도
눈동자에 바늘로 새기듯이
반드시 기억해야할 일들이
있는 법이다.
그렇지 않은가?


Google+